모두의 행복을 빌면서 마무리를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빠들이 좀 덜 행복해야 공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내가 수많은 날들을 오빠들에게 감정이입해서 살아왔던 것에 대한 답례로 오빠들도 지금 이 순간의 내 맘을 똑같이 느껴보기를 바라기도 한다. 오빠들이 오빠들이었던 시간, 그리고 아니게 된 후부터의 시간이 그 길이가 비슷해져 간다. 정말 다들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링크를 타보다가 진창을 발견했다. 여전하거나 더 나빴다. 정말 기가 빨린단 말은 이 정도는 돼야 쓸 수 있겠거니 했다. 오빠가 보고 있고 느끼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말로 궁금하다. 제 정신인 오빠들의 팬은 여기에서 견딜 수가 없어. 얼마나 많은 상식적인 팬들이 떠나갔는지, 지금 있는 팬들은 어떤 생각으로 거기서 버티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오빠는 없겠지. 그래도 오빠는 잘 살고 있으니까.
나는 2008년 12월 26일 5주년 팬미팅 후기에서 이렇게 썼었다.
준수오빠가 울 줄 몰랐기 때문에 제법 놀랐다. 거기에 놀라 헉, 하고 있는다가 나름대로 이성적이고 자칭 '피도 눈물도 없는' 재중오빠가 마이크를 이어받아 감정을 정리하고 따스한 이야기로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 오빠의 울음이 터지니까 나도 주체를 못하겠더라. 오빠는 잘 안 우는 사람인데 피도 눈물도 없는데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해 미안하고 화가 나서 운다고 말했다. 따라 울며 생각했다. 이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앞으로 오빠들이 일본활동을 하는 동안 계속 반복될 악순환일거라고. 매 이 시즌마다 오빠들은 이런 행사를 열거고 이별을 예감하며 우리는 한 데 모이고 팬미팅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게 늘 눈물을 남기며 끝날거다. 우리에겐 이 슬픔을 막을 아무 권력이 없다.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이 많이 우울하고 힘들다는 거 오빠들도 알아줬으면, 지금의 이 지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바란다.
오년은 물리지만 그래도 견고하다. 맹목에서는 한걸음 물러졌지만 생활에는 더 가깝다. 아, 오년이 지나도 스물둘의 그 오년, 평생 안 올 것 같았던 그 오년. 하루를 마감하며 오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마 오빠들도 그러지 않을까.
불과 몇 개월 후 내 견고했던 오년이 한 순간에 깨져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던 때. 저 때가 지금 눈물나게 그립다. 달팽이 더듬이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던 내 십대에 오빠들이 가졌던 존재는 신생아에게 엄마, 종교인에게 신 이상의 의미였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오빠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밤이면 이제 진짜 안녕이구나 싶다. 그런데 정말 놓아버리기에는 오빠들을 빼고나면 너무 비어버리는 나를 감당할 수가 없다.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때, 그때쯤은 돼야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제일 멋있었던 내 오빠들을. 다섯 오빠가 다 나의 신이고 절대자였기 때문에 쿨하게 돌아설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난 계속 찌질한 구여친이 되어 관음하는 맘으로 아주 가끔 오빠들을 보게 된다. 괴롭다.
'무대 위 숨 쉬듯 노래하는 오빠들이 있고, 그 아래 숨 죽이고 듣는 내가 있는 가장 완전한 구도'를 매일 꿈 꿨던 고3의 나는 스물셋의 대딩이 되어 틴탑을 내새끼라고 외치고 있다. 오빠들을 좋아했던 기억이 비교기준이 되어 내새끼들을 좋아하는 지금을 덜 행복하게 하고 있던 생각이 들 때면, 반성을 한다. 울지 않고 행복하게 순간을 즐길게, 너희를 볼 땐 너희만 보면서.
지금은 미운 오빠들도 덜 미워하면서, 그래도 다들 행복한 게 내 행복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너그럽게 살고 싶다. 불 같이 괴로웠던 새벽을 마무리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