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며 12월 달에 이런 포스팅을 쓰고 싶었다. 바쁘고 정신 없어서 미뤄두었던 걸 더 미루면 영영 못 쓸 것 같아 토독토독 써본다...ㅎ 시간이 넘넘 빠르게 간다...


2023년에 인상깊게 본 책


-옥타비아 버틀러 <킨>
와일드 시드를 먼저 읽고 흥미가 생겨서 대표작이라는 킨까지 읽게 됐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인종과 젠더 문제를 다룬다. 킨이나 와일드 시드나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하기 어렵지만(주요 인물과의 관계성이 혐관이라 그런가...ㅎ) 가독성과 오락성이 미쳤다. 흑인여성의 삶을 독창적인 소재로 몰입감 있게 그려냈다.

-이언 매큐언 <나 같은 기계들>
좋아하는 작가로 이언 매큐언을 꼽으면서도 근래 읽은 스위트 투스와 바퀴벌레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나 같은 기계들은 넘 좋았다. 이렇게 문학적인 sf? 못 참지... 배경 설정부터 흥미롭다. 1980년 대 영국, 그러나 현재보다 과학기술이 더 발달한 다른 시간선의 영국이다. 앨런 튜닝이 죽지 않았고 비틀즈가 완전체로 재결합한 가상의 상황에서 인공지능 인조인간 아담이 주인공의 삶으로 들어온다. 인간성에 대한 도전과 윤리 문제를 감성적으로 그린다. 읽고 나서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공지능이 인간을 어떻게 판단할까, 무서워졌다.

-토바이어스 울프<올드 스쿨>
대전 독립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구입한 소설인데 거기서 마주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듯. 청소년기에 느끼는 계급의식과 작가로서의 태도를 자전적으로 그려냈다. 소설 읽는 걸 최고의 취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문학에 대한 찬가가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미리엄 테이브즈 <위민 토킹>
마거릿 애트우드의 추천하는 글이 적혀있으면 고민 없이 읽게 된다. 폐쇄적인 메노파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폭행, 강간 사건이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 피해 여성들이 모여서 마을에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의논하는 회의록의 형태로 내용이 전개된다. 생애 처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모인 여자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연대의식을 느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벅찼다. 영화도 기다린다... 빨리... 정식 개봉해주셈...

-에밀 졸라 <목로 주점>
인간 짐승과 테레즈 라캥으로 에밀 졸라의 입문한 후, 너무 재밌지만 기 빨리고 힘들어서 일 년에 한 권만 읽기로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23년에 선택한 소설은 목로 주점. 한 인간이 빈곤과 알콜중독으로 끝없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짧은 행복도 겪어보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나태와 탐욕으로 모든 걸 소진하고 진창에 쳐박히는 삶이 바로 앞에 펼쳐진다. 읽다보면 같이 진창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듯한 지독한 기분이 든다.

그외 인상 깊게 본 책으로는
트러스트와 가여운 것들(두 권 다 서술 방식이 라쇼몽 식인데 이런 거 좋아한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 본위인지 강조가 되고, 모호한 진실에 대해서도 더 골똘하게 생각하게 된다.),
매드린 밀러의 키르케와 아킬레우스의 노래(키르케 재밌게 읽고 아킬레우스의 노래까지 연이어 보았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넘나 걍 퀴어소설;),
수확자 시리즈(동네 도서관 장기 연체자 때문에 지금에야 마지막 권을 읽고 있다. 유치한 중2병 감성을 극복하면 박력있게 쭉쭉 흘러가는 이야기가 오히려 좋다) 정도가 있다.




인상 깊게 본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마틴 맥도나 영화는 믿고 본다. 올해 가장 재밌게 본 영화다. 평범한 배경과 일상적인 사건 속에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 번뜩인다. 사건이 중첩 될수록 인물들이 극단적이 되어 가는 게 쓰리빌보드와 비슷하다. 갈등을 끝까지 후벼파는 지독함이 있다.

-애프터썬
우울증을 영상화한 게 이 영화가 아닐까. 외로움과 슬픔에 잠겨 있지만 딸 앞에서는 괜찮은 척, 책임감 있는 보호자로 행동해야 하는 감정선을 표현한 배우의 연기가 미쳤다. 언더프레셔가 이렇게 눈물이 나는 노래일 줄이야...ㅠㅠ 여운이 오래 남은 영화였다.

-슬픔의 삼각형
감독의 전작 더 스퀘어도 그렇고 꼬는 거 없이 직설적이다. 조난이라는 상황을 설정해서 계급의 전복을 보여준다. 유치하고 단순하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웃음이 나오고 재밌었으니 장점이 더 컸던 것으로...

-어파이어
나는 폴라 비어가 참 좋다..... 감독의 전작 운디네는 잠기어 죽을 것 같은 사랑을 그려서 공감이 잘 안 됐고 올해 본 어파이어가 조금 더 취향에 가까웠다. 냉소적인 태도가 얼마나 세상살이 손해 보는 태도인지 백프로 공감하고요...이렇게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비호감 캐릭터는 오랜만이라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다.

-3000년의 기다림
22년 말에 본 영화인지 23년 초에 본 영화인지 좀 헷갈리지만...맨프롬어스나 12인의 성난 사람들, 대학살의 신 같은 앉아서 입 터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램프의 요정 지니가 해주는 3000년의 이야기도 화려하고 재밌지만 지니가 이드리스 엘바라는 것, 그리고 그를 깨운 여성이 틸다 스윈튼이라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이 발라드
기존 헝거게임 시리즈도 다 까먹은 상태라(캣니스 최고... 피타 흑흑의 감상평 뿐이 안 남음)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본건데 후회 없었다. 매력적인 악역의 탄생을 봤다. 쓰레기 같은 인물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 데에는 배우의 공이 컸으니까 그 배우의 발견이라고 해야 하나. 무튼... 학생... 금발 잘 어울리니까 덮어...


24년에는 더 많은 재밌는 책과 영화를 보고 시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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