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빠로서 이대호가 은퇴하기 전에 사직구장을 한 번 다녀와야 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내가 쉴 수 있는 날과 우리팀이 부산 원정 가는 날을 맞춰 8월 말 목요일 부산으로 향했다.


서울은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고 서늘했는데 부산은 쨍쨍하고 더웠다. 성수기를 지난 평일이라 관광객이 적을 줄 알았것만 그렇지도 않았다. 붐비는 부산역을 나와 근처 본전돼지국밥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인근 직장인들과 관광객들로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다리고 싶지 않아 짐부터 내려놓을 생각으로 호텔로 향했다. 역과 가깝고(부산은 크니까 어디서 묵든 이동거리가 다 멀 것을 감안해 가방부터 내려놓고 움직이고 싶었음) 깨끗하고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다가 시티호텔이란 곳에 묵게 됐다. 룸은 선택지 없이 투베드여서 베드 하나는 수납용으로 썼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돌아온 후에도 본전돼지국밥의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날 뭔가 몸이 허한 느낌이라 첫 끼로 돼지국밥이 꼭 먹고 싶어서 본전국밥 바로 옆 웨이팅이 단 한 팀뿐인 신창돼지국밥에 들어갔다. 국물이 맑고 독특한 맛이 났다. 입에 딱 맞지는 않았지만 돼지냄새 안 나서 만족했다. 고기국물 먹고 기운 났으면 그것으로 끼니의 목적은 달성한 것...



근처 창비부산과 카페가 한 건물에 있어서 쉴 겸 들어갔다.



윗 층 창비부산에 먼저 갔다. 처음 방문한다고 하니 직원분이 친절하게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메모지와 파일을 주셨다. 책도 보고 북마크도 만들어보았다.



1층으로 내려와 카페 브라운핸즈에서 커피 한 잔했다. 이 날의 첫 커피라 카페인을 들이붓는 느낌이 감동적이었다. 한 잔 호로록 마시고 부산역으로 나와 용궁사에 가는 버스를 탔다. 못 앉을 것 같아 한 대를 보내고 눈치싸움 끝에 다음 버스를 탔다. 빠르게 버스 안을 스캔하고, 버스가 멈출 곳을 파악하고, 남들보다 빨리 타서 자리에 앉고 나니 스스로가 어찌나 대견스럽던지... 한 시간 넘게 타고 갈 거라 꼬옥 앉고 싶었다. 짧지 않은 시간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부산의 풍경을 보는 게 또 하나의 재미였다.



부산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용궁사는 처음이다. 야구 보는 거 빼면 용궁사 가는 게 유일한 계획일 정도로 이번 여행의 핵심 관광 포인트...! 그러나 이 날은 너무 더웠다...



좁은 동굴 같은 길을 지나면 이런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맞붙어 있어 근사하다. 낙산사와는 또 다른 느낌.



그늘이 없는 곳에서 황금불상을 바라보고 서있으니 땀샘이 폭발했다. 얼굴땀을 닦으며 빠르게 용궁사 관광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해변열차 타라는 추천이 많아서 돌아가는 길만이라도 타보려고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앉다보니 어느 대가족들 틈새에 낀 요상한 꼴이었지만 머어땨용... 앞자리 사수하고 바다 더 잘 보면 됐지...



이런 풍경들을 고생 없이 편하게 앉은 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개꿀입니다...



종점인 미포 정거장에서 내려 바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당과 카페인이 다 필요해서 흑임자아인슈페너를 시켰다. 검색해보니 리베먼트라는 곳인데 커피는 쏘쏘였고 가게가 시원하지 않아 계속 더웠던 기억이 난다.



해운대가 코 앞이지만 이렇게 스쳐만 지났고 바로 지하철 탔다...ㅋ 3일 동안 모래사장을 한 번 안 밟았당... 광운대교 야경을 볼까 말까 하다가 선발 매치업이 목요일 경기가 더 유리해서 걍 밤에 이틀 연속 야구 직관만 함...ㅎ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배민으로 이재모 피자를 시켰다. 배민에 있어줘서 넘나 감사... 치즈가 많고 토핑이 베이직해서 맛있다. 토핑 많은 도미노 피자도, 얇은 화덕 마르게리타 피자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재모피자도 가끔 생각날 듯.(걍 모든 피자 다 좋아하는 사람인가 봄...ㅎ) 저녁으로 두 조각 먹고 남은 조각을 3일 내내 아점으로 먹다 보니 다른 맛집들을 못 찾아간 것은 조금 아쉽다. 그치만 음식 남기는 게 넘 싫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3일에 걸쳐 먹고도 한 조각 남아 호텔 냉장고에 두고 온 나는 먹찌질이...



사직구장 예매는 인터파크도, 티켓링크도 아닌 롯데자이언츠앱을 통해 해야한다. 진입장벽이 좀 있다고 느꼈고(귀찮고 낯설다는 뜻), 롯데포인트 적립을 해줄거면 롯데 공용 아이디를 걍 같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적립하려고 롯데포인트 카드번호 16자리 다 치고 있으니 현타 왔다...ㅎ 처음 가는 사직구장이라 대충 응원석 비슷한 곳으로 예매를 했다. 내 기준으로는 경기장과 너무 가까워서 시야가 답답했다. 그래서 경기 중에 금요일 경기 예매해둔 걸 취소하고 뒷 구역으로 다시 예매했다...ㅋ 관중석 짭허니의 지도 하에 설렁설렁 응원하면서 경기를 봤다. 원정경기는 서울로만 다니다보니 우리 팬이 압도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응원하는 기분을 처음 느껴봤다. 이색적이고 재밌었다. 롯데 응원가를 절로 따라부르게 된다ㅋㅋㅋㅋㅋ 롯데팬 친구와 홈팀 응원석에 앉아보고 싶다. 그리고 이대호 은퇴하지마...ㅠㅠ
이 날은 삼성이 무난하게 이겼다. 2002 올드 유니폼을 첫 개시한 날, 내가 마킹한 오승환 선수가 세이브하는 모습을 보고 사직구장 직관 승률 10할인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다. 귀갓길에 사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무계획의 둘째날. 아점으로 전 날 남은 피자를 한 조각 먹고 전포동 가는 버스를 탔다. 커피 마시고 소품샵 구경을 하자, 정도만 생각하고 나섰다. 베르크로스터스라는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직원분들이 친절하고 공간이 독특하다. 추천해주신 커피를 주문해서 받고 윗층으로 올라가니 대합실처럼 의자를 배치해둔 공간이 나왔다. 여럿이 와서 오래 앉아있긴 별로일듯. 난 혼자왔기 때문에 노상관... 커피 맛있었다.



구름이 예쁘고 날씨가 좋았다. 잠깐 걸었을 땐 행복했지만 죽음의 소품샵 투어를 하니 넘 지치고 힘들었다. 전포동에 소품샵 쥰내 많다... 구경만 많이 하고 많이 사진 않았다. 내가 쓸 샤프와 소품샵 마다 있어서 궁금해서 사본 밤잼(선물도 할 겸 여러 개), 스티커 정도 샀다.



점심으로 점 찍어 둔 곳은 로위버거였지만 아점으로 피자를 먹어서 점심은 매운 게 땡겼다. 검색하다가 부산 왔으니 대표음식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본가밀면에 갔다. 비빔밀면 한 그릇 먹었다. 근처에 알라딘 서점과 예스 24 중고서점이 있어서 다음날 읽을 책을 사기 위해 방문했다. 알라딘 보다 예스24가 책 컨디션이 더 좋고 권수도 많았다. 말이 중고지 새책 같은 상태여서 여러 권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신중하게 소설책 한 권을 구매했다.



카페 오프커스에서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를 한 잔했다. 긴 소품샵 투어의 피곤과 밥을 먹고 난 식곤증으로 몹시 졸렸다. 호텔로 돌아가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지 모르는 사직구장을 가봐야 하니까... 시간 맞춰 나와 사직구장 가는 버스를 탔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여러 대 있어서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탔는데... 가는 길이 험하고 기사님의 운전도 거칠어서 멀미가 났다...ㅠㅠ



생애 두번째 사직구장 방문. 이 날은 하늘이가 선발이라 큰 기대 없이 봤다. 그러나 이대호가 하늘이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는 걸 볼 줄을 몰랐지...ㅜㅜ 이대호 서타다 서타... 은퇴하지 마세여....ㅠㅠ 부산팬들이 이렇게 이대호를 사랑하는데 왜 은퇴하시는 거예여...ㅠㅠ 나중에는 삼성 응원팬석에도 다 같이 이대호 응원가 부르고 정줄 놓고 관람했다ㅋㅋㅋㅋㅋ 사직구장 직관 승률은 이제 딱 오할...
호텔로 돌아와 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유투브를 봤다. 잘 못 먹는 게 아니라 군것질을 많이 하넴...

마지막 날, 이제는 조금 지겨운 피자로 아점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일단 무거운 짐가방을 부산역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넣었다. 그리고 흰여울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버스 안에서 그 다음주에 있는 잠실 두산전을 예매했다...ㅎ 야구 보러 가서 야구를 예매하는 삶... 하루 하루가 예매인 삶...ㅎ)



흰여울마을이 지난번에 갔을 때 너무 좋아서 또 가고 싶었다. 이렇게 건물들 사이로 한뼘씩 보이는 바다가 운치있고 좋다.



날이 흐려 바다의 반짝거리는 느낌이 덜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분위기 있었다.



감성 포토스팟은 못 지나치고 지나가는 여성분께 부탁해 사진도 찍었다. 지금, 여기, 우리 흰여울...



대도시와 넓은 바다를 한번에 느낄 수 있는 게 부산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와도 좋겠지만 여름보단 겨울이 더 좋다... 너무 더웠으니까...



카페가 몇 군데 더 생겨서 선택권이 많아졌다. 에테르라는 곳에서 아아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왠히괜지 바다를 보며 책을 꼭 읽고 싶었다. 그런 여유를 부려보고 싶었음ㅎ) 책은 전날 산 그레임 맥레이 버넷의 블러디 프로젝트. 살인사건 그만 좋아해야 하는데 이런 자극적인 소재를 보면 읽고 싶어서 못 참겠다...
책 조금 읽다가 남포동에 가서 시장 구경을 했다. 친구들과 같이 갔을 땐 시장구경이 재미났지만 혼자 구경하니 영 흥이 안 나 빨리 접었다.



테이블링 예약해서 웨이팅해야 하는 신발원 말고 그 옆에 마가만두에 갔다. 십 분 기다리니 자리가 나서 군만두와 새우찐만두를 주문했다. 흑흑 너무 맛있었다. 군만두 세 개, 찐만두 세 개 먹고 남은 만두는 포장을 했다. 혼자 여행은 여러 메뉴 다양하게 못 시키는 게 아무래도 젤 아쉽당...



떠나기 전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려고 바우노바백산에 갔다. 드립커피 넘 맛있다. 드립 원액도 맛 보라고 주셔서 먹어보았다. 진한 초콜렛 같은 맛이 나서 카페인이 퐉 오르며 기분이 좋아졌다.

잘 쉬고 땀을 식히고 나왔다. 부산역까지 지하철 한 정거장이라 지하철 타기도 뭐해서 걸었다가 다시 더워졌다...ㅎ 삼진어묵에서 모듬어묵 하나 사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서울 간다고 하니 아이스팩 포장을 해주셔서 아이스팩 포장된 어묵과 짐가방과 만두와 밤잼과 양장소설책으로 어깨가 부서질 듯 무거웠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SRT에 올라 자야한다는 강박감으로 ASMR을 들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