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하기 싫고 커뮤에 들어가는 일이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날이라 일기를 써본다.
지난주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의 빈약한 벚꽃나무와 비교해 이곳의 벚꽃은 벚꽃길을 이루며 풍성했다. 주말에 비 예보가 있었기에 올해 마지막 벚꽃이란 걸 알았다. 봄은 또 오고 꽃은 또 피겠지만... 내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길 따라 고인 꽃잎과 나란하게 걸었다.



더워서 잠시 들린 근처 카페 후디커피. 여기에 이런 곳이? 싶은 장소였다. 아아와 솔티드카라멜 휘낭시에로 힘을 냈다.



어릴 적 살던 골목을 걸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고 바로 뛰어내리는 게 유치원생의 익스트림이었다. 친구들끼리 꼭 그렇게 뛰어내리도록 응원하고 강요했었다. 타고난 겁쟁이인 나는 몹시 무서워했던 기억...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려다 보아도 무섭다.



오성쌀상회 옆에는 푸름슈퍼가 있었다. 사라진 것도 많고 사라지고 있는 중인 것들도 많아서 애틋한 맘이 든다. 어렸던 나와 젊었던 부모님 생각이 난다.



비 내리는 토요일, 리어왕을 보기 위해 국립극장에 갔다. 국립극장에 올라가는 길목에 선 벚꽃들이 바닥에 새로운 벚꽃나무를 만들고 있었다. 제법 비가 많이 왔지만 운치를 느끼며 걸어서 올라갔다.



젖은 가지 위로 흰 점처럼 박힌 꽃잎들. 사진 찍으며 천천히 걷느라 내 에코백이 이 가지만큼 흠뻑 젖어있었다...


 
타님, 찐님과 리어왕을 봤다. 긴 대사 홍수에서 잠깐씩 졸음에 잠겼다. 고전에 현대적인 무언가를 입힐 때 그게 뻘하게 느껴지지 않고, 잘 달라붙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주연인 이언 매켈런 말고 다른 배우들은 연기를 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졸음과 위화감을 느끼며 빠른 걸음으로 국립극장을 나섰다.



예약해둔 황토집 묵은지닭한마리를 먹기 위해서... 세 명은 모여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약수역에서 셋이 만나는 날을 기다렸다. 묵은지 맛있었고 닭도 맛있었다. 가슴살이 뻑뻑하지 않고 부들부들한 것이 맛나맛나. 연극 보러 만는 게 아니라 김치찜을 먹으러 만난 것이었다.



화요일, 북서울미술관에 가는 길에 햇빛과 초록의 나무가 아름다웠다. 벚꽃은 졌지만 이 햇빛과 이 초록은 봄을 느끼게 해준다.


미리 예약을 하고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보았다. 인상적인 영상물이 몇 개 있었다.


루시 매크래의 고립연구소.



이건 그냥 귀여워서... 작품 일부만 확대해서 찍었다. 제목은 신성한 돌.



비치된 오디오 장비를 이용해 소리를 들어야 하는 작품이 많았다. 비닐장갑을 낀 채 헤드셋 커버를 끼웠다 벗겼다 반복해야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은 품이 들고 귀찮았다... 아이리버 엠피쓰리가 반가워서 찍었다. 나는 삼성yepp을 썼었다.



같이 열리고 있는 풍경과 정물이란 전시도 봤다. 봉투 안에 작품 엽서 두 장이 들어있어 기분이 좋았다... 무료 전시에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빙벽.


노란 꽃.



걷기로 마음 먹은 날이라 근처에서 약간의 쇼핑을 마치고(잠실 버터가 없어져서 노원 홈플러스 안에 있는 버터에 갔다. 여러 번 재구매한 작은 3단 우산과 바스락 거리는 반바지를 하나 샀다.) 공릉까지 걸었다. 노원의 차분한 분위기가 좋다.


 
공리단길 어느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마시며 책을 좀 읽었다.

12시가 넘었고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다... 잘 자고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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