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1/4이 지났다. 3달 동안 뭘 읽고 뭘 보며 어떻게 사부작사부작 거렸는지 써본다.
올해 첫 책으로 이언 매큐언의 스위트투스를 읽었다. 냉전 시대 M15에서 일하는 스파이 주인공과 그의 작업대상인 소설가라니, 설정만 봐도 재밌다. 백퍼센트의 확신을 갖고 책을 구입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노센트를 읽었을 때의 긴장과 충격이었으나 스위트투스는 그보다는 독서와 창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에 짧은 단편들을 읽는 재미는 있었다. 다만 내용도 전개도 예상 밖...
올리브 키터리지의 다음 이야기인 다시, 올리브도 읽었다. 드라마 올리브 키터리지를 본 이후 올리브가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얼굴을 한 구체적인 이미지로 상상이 되어 배로 감정 이입이 됐다. 늦은 밤 책장을 덮으며 눈물이 났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늙는 것, 죽는 것 그저 누가 몇 걸음 앞서거나 뒷서거나 할뿐인데 왜 이런 슬픔을 느끼게 할까ㅠㅠ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여간해서 우는 일이 없는 차가운 심장인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나를 눈물 흘리게 한다. 감정의 공명이 맞는 것 같다고 (나 혼자) 생각하는 작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을 아껴가며 보고 싶다.
시녀이야기의 다음 이야기 증언들도 읽었다. 시녀이야기가 숨 막히게 갑갑했다면 증언들은 그 닫힌 세계 안에서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전복이 움트기 때문에 훨씬 읽기 수월했다.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리디아아주머니의 목소리로 듣는 길리아드의 역사는 아주 오싹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유와 평등이 언제든 후퇴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러했다.
다른 작품이 더 읽어보고 싶어서 눈먼 암살자를 봤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세 편의 이야기와 중간 중간 삽입된 신문기사들 탓에 초반부에는 집중이 쉽지 않았으나 이내 상상을 능가하는 끔찍한 전개, 충격적인 반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캐나다의 현대사, 한 가족의 가족사, SF소설 속 왕국의 역사가 얽히며 독자를 매혹적인 슬픔 속으로 데려간다. 넘 재밌었고요. 별이 다섯 개.
찬호께이를 처음 읽은 것도 올해 초. 단편집 디오게네스 변주곡은 실망스러웠지만(작품마다 편차가 너무 심하고 추리, 판타지, SF, 미스터리 장르가 섞여있다. 이게 나에게는 좋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찬호께이는 홍콩 사람인데 홍콩이 문화적으로 일본 영향을 많이 받나? 일본 전대물을 컨셉으로 하는 단편도 있고, 등장인물의 외모를 비유할 때도 일본 아나운서, 연예인을 사용하기도 한다.) 장편소설 13.67은 재밌었다. 모든 부분이 재밌었던 것은 아니고 중반부 전혀 안 궁금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거기 견디니까 다 보고 자고 싶어서 잠 못 잘 정도로 재미졌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 충격을 받고 다시 맨 앞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좀 더 많은 추리소설이 읽고 싶어서 쯔진천의 무증거범죄도 읽었다. 그냥 그랬다. 잘 짜여진 추리소설이 있으면 추천을 좀 받고 싶다... 날이 더워지면 다시 도전...
한국 소설들 몇 권 포함해서 틈틈이 1분기 동안 스무 권 넘는 책들을 읽었다. 인상적이었던, 좋았던 소설은 마이라나 엔리케스의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맨디블 가족, 밀란 쿤데라의 농담 정도. (작년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나서, 안 읽히는 소설을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기억력은 명백하게 떨어지고 있지만ㅠ 이해하는 게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13.67을 읽고 가보지도 않은 과거의 홍콩에 대한 향수가 차있는 상태에서 왕가위 특별전을 보러 다녔다. 처음 보는 작품도 있고 어렸을 때 보고 다시 보는 작품도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해피투게더가 제일 좋았고 다시 보니 화양연화와 중경삼림이 좋다. 타락천사는 과한 허세에 조금 놀랐지만 누구나 가슴 속에 중 2였던 시절이 있으니까 눈을 뗄 수 없었다. 허세도 뻔뻔하게 밀고 나가면 인정해줘야지. 그리고 나는 여명, 장국영, 금성무 보다는 양조위다. 금성무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가는 건 양조위야...ㅠㅠ 껄꺼찌시 쌜라다!
프랑수와 오종 영화도 봤다. 인더하우스와 프란츠만 본 극호감인 상태에서 썸머85와 신의은총으로를 연이어 봤다. 재미없어서 깜짝 놀랐다. 판단하기 위해 다른 작품들을 좀 더 봐야 하는 건지ㅠㅠ
볼 영화가 없을 땐 극장에서 재상영하는 오래된 영화를 봤다. 늑대와 함께 춤을, 람보를 상영관을 전세내고 혼자 봤다. 크... 고전 명작은 다 이유가 있었다. 특히 람보는 미국 국뽕 전쟁영화라고 근거 없이 유추했었는데 오히려 전쟁 PTSD를 다룬 반전영화였다. 제작 코멘터리와 함께 람보가 설득되어 투항하는 지금의 엔딩과 자살하는 원래의 엔딩을 같이 보여주었다. 후속편들에서 람보가 이용되는 걸 보면 그냥 1편에서 죽는 게 나았을 수도...ㅠㅠ
소울은 좋았고, (현실이 아닌 과거 혹은 미래를 사느라 이 순간 느껴지는 풍부한 감각들을 놓치고 산다는 느낌을 다 갖고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괜히 하늘을 한 번 보게 되고 숨을 깊이 한번 쉬어보게 됐다. 그리고 피자를 사서 귀가했다ㅋㅋㅋ) 미나리는 모를...이었다.(독립영화 느낌으로 보면 된다고 하던데 요즘 한국 독립영화들도 그보다 짜임새 있고 볼만하지 않나... 밍숭맹숭함이 문제가 아니라 뻘하고 좀 이상하다. 연기도 모르겠읍니다... 특히 스티븐연 넘 별루...) 의외로 재미있던 영화는 북스마트였고(공감성수치 오질 걸 예상했으나 전형적인 하이틴 무비를 한번 꽈서 유쾌했다. 킬링타임으로 추천추천) 의외로 별로였던 영화는 퍼펙트케어였다.(로자먼드 파이크의 열연을 깎아먹는 어처구니 없는 황당한 전개가 가장 큰 단점이었고, 그 외에도... 좀 트위터발 주작 사이다썰 느낌이 났다. 특히 초반부 찌질해 보이는 남자가 주인공을 위협하며 더듬더듬 욕을 하고 거기에 주인공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성적인 욕으로 한 방 먹이는 부분이 1오글...ㅠ 그리고 다 젖은 상태로 슈퍼마켓에 들어가 남자주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속옷 차림으로 서있는 부분이 너무 이상해서 기억에 남는다. 어느 여성도 그러지는 않을 것...)
왓챠가 해리포터를 데려와주어서 올초에는 해리포터를 몰아서 봤다. 3편부터는 약간 견디듯 봤다. 어둡고 푸르스름한 영상과 우울한 얘기들을 집중해서 보고 있기가ㅠㅠ 부모를 잃고 가족 같은 존재도 잃은 해리 너무 불쌍하고요, 두들리들 아동 학대로 다 빵에 가야 하고요ㅠㅠ 마법사 세계 너무 미개해서 곧 망할 것 같읍니다...
해리포터를 보며 선인장 화분 뜨는 연습을 했다. 인형류가 뜨기 어렵지는 않은데 완성도 있게 모양새 나게 만들기가 어려운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얼레벌레 막 하는 경우에는... 이게 1트라 젤 모양새가 별로다ㅋ
해리포터는 편수가 많으니까~~~~ 2트까지 연습한 후에 선물용으로 더 떴다. 타님과 찐님께 이렇게 선물~~~~ 양 조절을 못해서 방울솜이 많이 남았다. 올해 안에 인형류를 뭐라도 더 떠야할 것 같다.
찐님이 브로드처치 재밌다고 추천해줘서 찜만 해두었는데 3월 말에 넷플에서 내렸다. 그 전에 허겁지겁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내용인 줄 몰랐다. 사람이 싫어지는 기분^_T 역시 가만히 보기 어려워 남는 종이실로 꼼지락거렸다. 다이소에서 산 똑딱이 단추까지 달아서 카드지갑을 만들었다. 스티치 들어간 건 엄마 꺼, 안 들어간 건 내 꺼. 실사용은 아직 안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꺼... 브로드처치 시즌 3은 넷플에 또 없당. 3도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내용인지 궁금하고여...
갑자기 프랑스 자수가 궁금해서 간보기 시작... 취미 간보기는 다이소만한 곳이 없다. 대충 내 눈에 귀여워 보이는 도안 사서 유투브 보고 따라해보았다. 꼼꼼하고 예쁘게는 못해도 키치한 느낌으로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당근마켓에서 스타터키트를 구입하고 거기에 없는 철필과 먹지는 동대문 가서 구입했다. 그리고 2달째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ㅋㅋㅋㅋㅋ 나는 그냥 넷플릭스나 왓챠 보면서 한 땀 한 땀 뜨고나 싶지 도안 옮기고, 실 나누고 정리하는 건 안 하고 싶다... 너무 손 가는 게 많아서 정말 하고 싶을 때까지는 보류...
2월, 관람기간이 연장된 데이비브 자민전을 혼자 보고 왔다. 율동감 있고 스타일리시한 작품들도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전했다. 혼밥이라 봉산옥 갈까 허수아비 돈까스 갈까 고민하다가 돈까스로 위장을 채웠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셨다.
바로 다음 날 친구들이랑 앙리 마티즈 전을 봤다. 이 전시야 말로 얼리버드 관람기간을 연장해주고 또 연장해줘서 겨우 다녀왔다. 전시회보다는 간만에 삼성동 나들이가 설렜다. 다섯 개의 점심식사 메뉴를 제안했고 그 중 팀호완이 체택되어서(그냥 대만에 놀러가고 싶은 걸지도ㅠㅠ) 딤섬과 우육면을 조졌다. 그리고 관람~~~~ 라떼가 맛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너무 맛있었나보다. 사진을 이렇게 초점 없이 달랑 한 장 찍어버린 줄도 몰랐네ㅠ
코엑스 구경하고 저녁까지 먹었다. 후무스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남겨본다. 건강한 느낌이었고 다음에는 튀긴 팔라펠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샥슈카는 말모... 보이는 대로 그냥 맛있지...
타님이 여고추리반 영업해서 티빙 가입했다.(네이버플러스 1달 무료로 티빙까지 이용!) 그냥 아기자기한 맛으로 보다가 스케일 커지니까 역시 대탈출 느낌났다! 아니 오히려 대탈출보다 보기 편했다. 긴 생색 타임과 호들갑 타임이 없고 짜증나는 서열질이 없으니까. 무서워 하기는 하지만 다들 할 거 해서 보기 좋다. 애기처럼 구는 ㅇㄴ형이 장벽이긴 하지만... 귀척하는 ㅍㅇ도 견뎠으니 이겨내야지... 시즌 2 기다린다...
하오카 시즌 2보고 있고 굿와이프 시즌 4 다 봤다. 요즘 보는 영상물을 이 정도... 열심히 찾아보는 건 없다. 한동안 빠ㄷ너스, 피ㅅ대학 열심히 보다가 지금은 질렸다. 빠ㄴ보틀 여행 영상 좀 보다 말았고(재밌는데 몰아보게 되지는 않넴...)꾸준히 보던 브이로그 몇 개도 질린 상태... 새로운 거 추천을 좀 받고 싶어서 검색해보고 있다. 매일 저녁 7시 침ㅊ맨 유툽 업로드만 기다린다... 안 질려... 제일 재밌어...
비오는 주말, 타님과 국립극장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봤다.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끼 많은 배우들의 개인기가 콸콸 쏟아진다. 동성애 코드의 성적인 유모어에 기겁하면서도 넘 웃긴 거! 뭔지 알거야 다들ㅋㅋㅋㅋㅋㅋ 성별 반전이 신의 한 수 였다. 저 공연을 실연으로 보는 관객들이 부러웠다.
이번주 주말에는 역시 NT live로 리어왕을 본다. 이언 맥켈런의 연기가 기대가 되면서도 긴 공연시간이 걱정이 된다. 점심 든든하게 먹고 주머니에 사탕이라도 챙겨서 졸지 않고 열심히 보겠다...
분기별로 일기를 쓸 자신은 없지만(별 것도 없는데 쓰는데 넘 오래 걸리네...ㅠㅠ) 재미있어서 공유하고 싶은 볼 거리, 읽을 거리가 생긴다면 포스팅을 해야겠다. 다이어리에 손으로 혼자 끄적거리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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