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비나 눈이 오면 망한 기분이 들고 넘 싫을 때가 있었는데 백수라 그런 기분이 안 들어서 좋다. 요 며칠 그칠 듯 말 듯 비가 계속 온다. 우산을 챙겨야 하는 건 귀찮지만 바지 밑단과 운동화 속을 적시지 않을 정도로 잔잔하게 내리는 비가 막 싫지는 않다. 그냥 저냥 견딜만 하다.

 

 월요일에 도서관에 가고 싶으면 그날은 꼭 휴관일인 이상한 징크스가 있는데, 오늘이 그랬다. 좀 떨어진 도서관을 갈 수도 있지만 또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강햏이 밤새 이상하게 보채서 제대로 못 자고 11시 너머 정신을 차렸는데, 씻고 나가서 좀 걷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읽을 책 한 권만 가방에 챙겨 공원을 걸었다. 비가 내리다 말다 해서 우산을 쓰다 말다 했다. 무수히 많은 낙엽이 바닥에 깔려있는데도 또 여전히 많은 잎들이 가지에 달려 있었다. 비 때문에 더 진해진 흙 냄새, 낙엽 냄새를 맡으며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들었다. 아직은 가을 같은 가을이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카톡으로 주말 모임 장소를 정하고, 티몬에서 휴면계정 처리해놓은 아이디를 살리기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도 하고, 화장실도 두 번 가고, 다이어리도 쓰고) 일어났다. 내일 아침으로 버터프레첼을 먹고 싶어서 롤링핀에 갔는데 그 빵은 다 나가고 없어서 무화과가 들어간 건강해 보이는 빵을 샀다. 크림스프를 끓여서 같이 먹어야징...

 

 지난 근 일주일 동안 안 읽히던 책들을 마무리 지었고 007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을 다시 앞으로 가서 첨부터 읽었고 같이 빌려온 픽터 빅셀의 계절들을 넋 놓고 읽었다. 작가들이 힘 주어 쓴 단편집인 올해의 이상문학상도 유난히 읽기 힘들어서 몇 작품 읽다가 몇 달을 손 놓고 있었는데 맘 잡고 마저 읽었다.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들어 개운했다. 이번주는 잘 읽히는 책들을 골라 읽으려고 한다.

 

 007은 스펙터 개봉에 앞서 앞 내용을 복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지노로얄, 퀀텀, 스카이폴을 차례로 봤다. 그리고 개봉 첫날 조조로 스펙터를 품었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팬은 아니라서 이번 편이 유독 망작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내가 007 시리즈에 느끼는 감상은 매끄럽지 못하고 뚝뚝 끊긴다,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물이 되기엔 허세와 치명적인 척이 넘나 과하다, 엮이는 모든 여자들과 자야 하나ㅋ, 영화 넘나 길다... 등 정도인데 이번에도 비슷하게 느꼈다. 남들 좋아하는 스카이폴보다는 카지노로얄과 퀀텀을 더 재밌게 봤다. 스카이폴은 다시 봐도 나홀로집에 같았다... 그래도 첩보 액션물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와챠 별점 4개를 줬다.

 

 007을 보고 오니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물의 지존이신 본시리즈가 보고 싶어졌다. 마침 저격자라는 우리 나라 제목이 붙은 텔레비전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다운 받아 놓은 터라 그냥 쭉 봤다. 1988년이면 그렇게 옛날 영화는 아니었는데 텔레비전 영화라서 그런지 액션이 눈에 차지 않았다. 보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라고 하니 참고 봤지만 본도 내가 아는 본이 아니었다. 인질로 잡은 여자주인공을 드잡이 하고 머리채를 잡다니...ㅠㅠ 그리고 존나 쎄지도 않았다. 힘들게 3시간을 봤다. 왜 원래 책 제목이 잃어버린 얼굴이었는지는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낮밤이 완전히 바뀌어서 좀 돌리고 싶은데 저녁잠이 쏟아진다ㅠㅠ 지난 주말엔 한숨도 못자고 점심약속에 나가기도 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집에 가면 꼭 밤에 자야지 다짐했는데 버스 안에서 이십분 간 꿀잠을 자고 말똥해져서 피폐한 취미질로 밤을 샜다. 아 ㅍㅍ을 끊은 줄 알았는데 나이 먹고 다시 시작했고, 역시 bl은 끊을 수 없는 취미인가 싶거... 나는 한빙지옥에 떨어지기로 예정이 되어 있어서 하나도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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