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요즘은 딱 좋은 날씨다. 도서관 가는 길에 괜히 커피를 한 잔 사서 공원을 한 바퀴 돈다든가, 영화보고 집에 오는 길에 어릴 때 살았던 동네를 어슬렁거린다든가 하면서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다. 추위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티에 적당히 도톰한 가디건 한 장 입고 기분좋게 걷는 일을 좀더 오래할 수 있었으면...
지난 주말에는 책 빌리고 받을 일이 있어서 쭈님을 만났다. 점심으로 내가 넘 먹고 싶었던 곱창을 먹고(우리 동네가 역시 값고 젤 싸고 양도 젤 많다. 야채곱창 넘나 맛있는 것ㅠㅠ) 커피 한 잔 들고 휘적휘적 동구릉으로 갔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청소년의 범주에 들어가서 무료입장이 됐고, 3개월 더 늙은 쭈님은 입장료 천원을 내야 했다. 기분이 좋아져서(ㅋㅋ) 청소년, 0원이 찍힌 티켓 사진도 찍고 즐겁게 동구릉을 산책했다. 저녁 즈음 또 다시 걸어 내려와 쭈님이 추천해주는 카페에 가서 라떼와 직접 만든 스콘을 먹었다. 잘 먹고 많이 걸었던 주말이었다.
수요일에는 쭈님과 동네 시립도서관에서 작가가 오는 독서토론회를 참여...관람했다. 내가 전부터 좋아하던 소설가님이 오신대서 같이 가자고 꼬셨다. 얼굴도 안 보이는 맨 뒷 자리에 앉아 쭈님과 필담을 나누며 듣기는 했지만, 작품에 이해도도 높아졌고 작가가 보다 친근하게 느껴지게 됐다. 토론회가 끝나고 책에 싸인도 받았다.
어제는 알람을 안 맞춰놓고 자서 예상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일어났다. 예매놓은 조조를 못 볼 위기였는데(동네도 아니고 잠실로 예매해놔서ㅠㅠ) 오히려 약간 침착해졌다. 일단 준비하고 버스타보고 시간 안에 못 갈 것 같으면 버스 안에서 취소하고 교보문고나 가면 되지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외출준비를 한 시간, 한 시간 반 잡고 하는데 삼십분 만에 씻고 화장하고 엄마가 텀블러에 커피를 준비해줘서 후다닥 뛰어나갔다. 버스 타이밍도 좋았고, 정류장에서 영화관까지 초행이 아니라 운 좋게 광고 상영 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본 영화는 맨프롬엉클ㅠㅠ 보려고 마음 먹었더니 동네에서는 이미 상영이 끝났다. 킹스맨보다 재밌게 봤고요... 어차피 개연성이 맛탱이고 비급유머와 비주얼로 승부하는 거라면 헨리 카빌을 품갰읍니다... 맨오브스틸 때도 고전배우처럼 잘 생겼다고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있기는 했으나 금새 잊었는데 다시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일리야 역을 맡은 아미 해머도 완전 다른 느낌의 잘생김으로 나를 행복하게 했다. 여배우도 존예여서, 존잘과 존예가 파티를 벌였다. 영상도 음악도 다 재밌었다. 줄거리의 허술함을 상쇄할 오락성은 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ㅠㅠ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고 교보문고에서 책을 한 권 샀다. 이번 달 안에 쓰지 않으면 포인트가 소멸이 된다고 해서 내년 다이어리를 살까 하다가 벌써부터 고르는 게 머리 아파져서 읽어야지 맘 먹었던 소설책으로 대신...
그리고 연이어 스파이 브릿지를 봤다. 어쩌다보니 냉전 시대 스파이 관련 영화 두 편을 같은 날에... 동베를린 풍경을 보면서 얼마전 읽었던 이언 매큐먼의 이노센트가 생각이 많이 났다. 황폐한 거리, 허름한 집, 그리고 그 추위까지...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 휴머니즘 가득한 인물은 사람을 좀 울린다. 러닝타임도 길고 초반에 좀 집중이 안 되긴 했는데 배경이 베를린으로 바뀌고 본격 협상에 돌입하는 순간부터는 피곤하지도 졸립지도 않았다. 엔딩에서는 많이 울었다. (스포주의) 안아주지 않고 뒷자리에 앉히는데 아마 아벨은 그 순간에도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을 거란 생각을 했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한 시대적 상황에서 사람이 사람답기는 얼마나 힘이 든지...ㅠㅠ 소련 스파이를 미워하고, 그 스파이의 변호인을 미워하고, 자폭하지 못해 적에게 잡힌 자국 군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조차 체제에 의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진 희생양이지만...ㅠㅠ 요즘들어 부쩍 제 정신으로 살아야지, 정신차리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오늘 한번 더 했다.
컨디션이 괜찮으면 재상영하는 아마데우스까지 1일 3영화를 때려보려고 했는데 스파이 브릿지의 여운이 길어서 이어폰 꼽고 생각하면서 집에 왔다.
날이 밝으면 영 진도가 안 나가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마저 읽을거다. 오늘은 피곤해서 생각하는 활동은 더 하고 싶지 않다...
'다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롱 (0) | 2015.12.02 |
---|---|
비 오는 월요일 (0) | 2015.11.16 |
가을 남이섬 (0) | 2015.10.26 |
캡쳐하고 싶은 영화 (0) | 2015.10.23 |
백투더퓨처 재개봉! (0) | 201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