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본 이후로 한 달 간 영화관을 안 갔다. 헉. 영화관 VIP 유지는커녕 쓰라고 준 쿠폰도 못 쓸 상황이 됐다. 끌리는 신작도, 재개봉작도 없었다. 어젯밤 그래도 영화 한 편 보러 가자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눈 떠서 컨디션이 좋으면(독하고 슬픈 영화를 견딜 수 있으면) 패왕별희를 보고 그렇지 않으면(짧고 편한 영화를 보고 싶으면) 우디 앨런 신작을 보기로 결심했다. 오늘 아침에 눈 떠서 아점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졸립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드물게 컨디션이 괜찮은 상태였다. 지금 보려고 그 동안 패왕별희를 보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예매...

데이가 우희와 스스로를 겹쳐보았듯 내 눈에도 장국영과 데이가 겹쳐보였다. 섬세한 예술가와 무너지기 쉬운 그의 삶을 그려본다. 그 지독한 몰입을 이해할 수 없지만 경지를 엿본 관객으로서 가슴이 시리다. 또한 훈련과 폭력을 견디는 아역배우들의 눈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데이와 도망을 쳤다가 다시 돌아온 소년이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소원하던 빙탕후루를 급하게 먹고 목을 맨 장면이 너무 충격이었다. 유년을 견디고 경지에 오르고 스타가 되었지만 데이는 우희가 아닌 삶을 사는 법을 몰랐고 야만적인 현실에 적응하는 법도 몰랐다.
급변하는 시대 배경에서 강한 여성 쥬산이 등장한다. 샬로와 데이를 멀어지게 하는 장애물로만은 볼 수 없는 인물이다. 쥬산은 위태로운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뛰고 아편에 중독된 데이를 어머니처럼 안아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샬로와 세상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공산당원 군중들 앞에서 샬로가 데이를 비판하는 것은 시대의 비극으로 볼 수 있었지만 부인인 쥬산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때는 놀랐다. 샬로는 경극을 연습하던 소년 시절 자꾸 실수해서 혼이 나는 데이를 혼나지 않게, 더 이상 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곰방대로 데이를 아프게 했던 그대로였다. 그 순간을 모면하고 자신과 쥬산 둘 다 살기 위한 선택이라해도 마음은 무너지는 것이다.

이 길고 슬픈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아서 다행이다. 혼자 다운 받아 봤다면 견디지 못하고 여러 번 끊어보았을 것ㅠㅠ 도서관에 들리고 햄버거를 먹고 저녁잠을 잠시 자고 일어나 취미생활인 비즈팔찌 만들기를 하는 늦은 밤까지도 먹먹하다. 오늘밤은 일초라도 함께 하지 않으면 평생이 아니라고 말하는 데이의 비현실적인 집착과 더 이상의 삶을 견딜 수 없었기에 내렸던 장국영의 선택을 생각하며 우울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다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수 놀이  (0) 2020.05.21
덕소 놀이  (0) 2020.05.14
시간이 살살 녹는 비즈반지 만들기...  (1) 2020.04.14
구리에서 밥 사먹기  (1) 2020.04.05
연말연초 커피 마신 얘기  (1) 2020.03.11

+ Recent posts